국제정치이론

소프트 파워(연성권력)에 대하여 알아보자

서희국제문제연구소 2022. 10. 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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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나 국제시사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소프트 파워(Soft Power), 혹은 연성권력이라는 개념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소프트 파워는 하버드 대학교 공공정책 대학원 교수였던 조셉 나이(Joseph Nye)가 소개한 개념으로, 그간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대다수 학자들이 군사력을 권력의 원천으로 보았던 것과 달리 '매력(attraction)'을 그 원천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권력에 대한 어느정도 차별화된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프트 파워가 전적으로 독창적인 개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류일 것입니다. 나이가 제시한 소프트 파워와 유사한 형태의 논의는 이미 정치학에서 꾸준히 다루어져 왔습니다. 예를 들어 권력 개념의 권위자 중 한사람인 스티븐 루크스(Stephen Lukes)와 같은 학자가 제시한 이념적 권력(ideological power)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개념은 상대의 생각에 영향을 끼쳐 행동변화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폭력이 아닌 설득과 매력을 통해 상대의 동의를 이끌어낸다는 소프트 파워와 상당부분 닮아있습니다. (참고자료: Lukes, Steven (2005). Power: A Radical View (2nd ed.). London: Palgrave Macmillan.)

 

그러므로 소프트 파워 개념을 제시한 나이의 공헌은, 그 동안 여러가지 형태로 다루어져 왔던 유사 개념들을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으로 간결하게 엮었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소프트 파워의 '파워(power)'는 우리말로 권력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권력이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개념들 중 하나라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권력이란 '남이 하지 않았을 것을 하게 만드는 힘'을 의미하는데, 이를 다소 거친 면이 없지 않지만 누군가의 행동이나 상황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으로 풀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즉 권력의 핵심은 '변화'이며 이는 누군가의 행동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생각을 변화시켜 이후의 행동에 장기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등 여러가지 형태로 구사될 수 있습니다.

 

소프트 파워 개념이 소개되기 전까지 국제정치에서 권력은 주로 억압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억압은 상대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하는 것으로 전쟁이나 협박, 또는 무력시위 등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에 반하여 소프트 파워는 설득이나 매력 어필을 통하여 상대의 의지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권력 개념을 제시합니다. 행동이 아닌 생각과 의지를 변화시킴으로써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권력 기반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억압과 폭력에 바탕한 권력은 불만과 반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내가 잠들었을때나 폭력을 구사할 힘을 상실하였을때 더 이상 작동하지 않지만, 설득과 동의에 의한 소프트 파워는 내가 나약해 졌을 지언정 계속해서 작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만을 볼때 누군가는 소프트 파워가 '선한 것(good)'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소프트 파워는 결국 누군가의 목적과 의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구사되는 하나의 정치/외교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형태만 다를 뿐 다른 권력과 그 실상은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일군의 학자들은 소프트 파워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이상적인 권력인가를 두고 갑론을박 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기꾼들도 설득과 생각의 변화를 이용하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고, 다소 모호하다는 점과 국제정치의 현실을 편파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이를 두고 스티븐 월트(Stephen Walt)는 소프트 파워에 대한 나이의 설명이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는 식으로 디스(?)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소프트 파워가 구사되기 위해서는 결국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물리적인 것들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개념이 지나치게 생각이나 관념과 같은 요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군사력/경제력과 같은 물질적인 것들, 이른바 '딱딱한 것들'에 바탕을 두는 하드 파워(Hard Power, 경성권력)의 도움 없이 과연 소프트 파워가 제대로 작동할 것이냐는 것이죠. 아름다운 자연을 보유한 티벳은 분명 매력적인 국가이고, 따라서 소프트 파워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과연 그것이 국제 사회에 실질적으로 발휘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쉽게 가질 수 있는 의구심입니다. 나이 또한 이 점을 인정하고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를 결합한 '스마트 파워(Smart Power)' 개념을 제시한 이래 소프트 파워에 비해 동 개념을 더욱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혹자는 소프트 파워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던 미국을 변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2004년 나이의 저서 "소프트 파워"가 출간된 이래 10여년의 시간 동안 최대의 화두는 부상하는 중국이었습니다. 이 시기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자국 이미지의 실추를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에는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제사회의 애물단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학자들은 이 시기가 미국이 보유한 군사력과 경제력, 즉 하드파워에 대한 국제사회의 믿음이 급격히 추락한 시기이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등장한 개념이 바로 미국이 보유한 문화와 매력, 민주주의 가치와 규범에 기반을 두는 소프트 파워라고 보기도 합니다. 

 

종합해 보면 결국 소프트 파워란 아테나, 로마, 영국, 미국과 같이 당대의 강대국들이 강력한 힘과 더불어 주변국을 매료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의 일종이며, 그것 자체만으로는 반드시 선하거나 악하다고 볼수는 없는 개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수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의 정당성에 있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Nye, Joseph Jr. (2004). Soft Power: The Means to Success in World Politics.(New York: Public Affairs)

Mattern, Janice Bially. (2005). "Why Soft Power isn't so Soft: Representaitonal Force and the Sociolinguistic Construction of Attraction in World Politics." Millenium, Vol. 33, No. 3, 583-612.

Ohnesorge, Hendrik W. (2020). Soft Power: The Forces of Attraction in International Affairs. Cham, Switzerland: Springer.

Lukes, Steven (2005). Power: A Radical View (2nd ed.). London: Palgrave Macmi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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