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이론

상호확증파괴(MAD)가 뭔가요? : 핵무기가 주는 역설적 평화

서희국제문제연구소 2022. 9. 1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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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우리 어른들은 너죽고 나죽자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더랬죠. 이런 표현은 국제정치에서 실제로 개념화되었는데요, 영어로는 MAD라는 약자로 표현됩니다. Mad의 사전적 의미로는 미친, 몸시 화난 등이 있는데요, 여기서는 그런 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라는 용어의 약자로서 쓰여집니다. 이 용어는 핵무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특히 최근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는 가운데 그 의미가 다시 중요해 지고 있습니다.

 

상호확증파괴 개념이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미국의 씽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의 연구원인 도널드 브레넌이 처음 만들어내면서 부터입니다. 상호확증파괴란, 종말에 가까운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가진 두 세력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파멸적 시나리오입니다. 일반적으로 적대적인 두 세력 중 한쪽이 공격적으로 나설 경우 상대방으로서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만약 두 세력이 보유한 무기가 세상을 끝장낼 수 있다면 양쪽은 행동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들도 세상의 일부이니까요.

 

상호확증파괴는 냉전 시기에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미국과 소련은 실제로 핵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워했는데요. 당시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가을 밤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을 나오며, 생각했다. 어쩌면 다음 토요일은 못 볼수도 있겠다고(It was a perfectly beautiful night, as fall nights are in Washington. I walked out of the president's Oval Office, and as I walked out, I thought I might never live to see another Saturday night.)”

 

쿠바 사태가 한창이던 시기 맥나마라가 했던 이야기는 핵무기에 대한 극한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당시 소련이 핵무기 전력을 과장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이처럼 미국은 소련의 핵무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소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두려움은 두 국가 사이에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였습니다. 그 결과 제한적 핵실험 금지조약을 비롯하여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일련의 협정이 두 나라 사이에 체결되게 됩니다. (체결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DvmCCp7z7o )

 

상호확증파괴는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막는 억지전략으로, 재래식 군사력이 아닌 핵무기를 통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재래식 군사력을 통한 억제의 경우, 전략과 전술을 통해 역량의 격차를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며, 또 실제 싸워보지 않으면 그 결과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허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상호확증파괴는 핵무기로 인한 결과가 매우 확실하므로, 혹시나 전쟁을 통해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낙관적 전망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상호확증파괴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인도와 남아시아에서 대립하는 파키스탄은 군사적으로 인도에 열세에 있지만,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하며 이를 극복하였습니다. 또 북한은 그간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는데요. 미국에게 실질적 군사 위협을 제기하여 미국과 독자적으로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과거 중국도 핵무기 개발에 열중했습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우방인 소련과도 갈등이 깊어지며 고립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 핵개발에 전력을 다한 것입니다.

 

상호확증파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상호확증파괴의 허점은 바로, 핵무기를 보유한 당사국 간에는 억지력이 잘 유지되지만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의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경우 상호확증파괴가 아니라 일방확증파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자신의 안보를 보장받는 대신, 핵무기를 포기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미국은 딜레마에 빠지게됩니다. “다른 나라의 안전을 위해 미국을 핵전쟁의 위협에 몰아 넣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대두되면서 미국이 정치적 혼란에 빠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런 질문에는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대응이 실제 핵전쟁으로 이어진다면 이것은 지구적 재앙이 됩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부터 러시아는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러시아가 내린 일련의 결정들이 합리성의 전통에 근거한 기존의 이론들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핵무기 사용은 러시아에게는 쉬운 옵션이고, 미국에게는 고민거리입니다.

 

그 동안 상호확증파괴는 우리가 소극적 평화라고 부르는, 전쟁없는 상태를 만드는데 어느정도 일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의 시기 동안에도 세상 어딘가에는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났고, 또 많은 고귀한 생명이 사라져 갔습니다. 어쩌면 상호확증파괴가 적용되는 나라는 오직 강대국과 소수의 핵보유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전쟁에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글을 마칩니다.

 

읽어드리는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yT29buz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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