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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사

군주의 자격: 찰스 3세가 이끄는 영국의 미래

서희국제문제연구소 2022. 9. 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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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부터 무려 70년간 영국을 이끌어온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 8일 서거하면서, 그의 뒤를 이어 찰스 3세가 즉위하였습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여러가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데요, 최근 그가 즉위식 행사 중에 짜증을 부리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그에 대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관련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vFiPNLgpsE)

영국은 입헌군주 국가이며, 의회가 사실상의 권력을 발휘합니다.

 

입헌군주제는 일본, 스웨덴 등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서 국왕은 형식상 지도자로서 군림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제한적이나마 특정 사안에 대한 신임 권한 등을 보유하기도 합니다. 최근 퇴임한 영국의 보리스 존슨과 새로이 임명된 트러스 총리의 퇴/신임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지는 것도 영국 국왕입니다. 이번 일로 인하여 트러스 총리는 엘리자베스 2세로 부터 취임 승인을 받게 된 마지막 총리로서 기억될 전망입니다.

 

국왕은 국가의 상징적 지도자로서, 민심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며 그에 대한 댓가로 실질적인 정치권력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됩니다. 총리의 취임 문제는 사실상 의회의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왕의 승인 여부는 사실 실질적인 힘을 갖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절차가 남아있고 여전히 작동하는 이유는 그러한 절차를 통해 국왕이 가지는 상징적인 지위가 민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로지 자국 국민들에게만 군림하는 일본 등 국가와는 달리, 과거 제국의 영광을 누린 영국의 국왕은 자국 뿐만 아니라 식민지였던 14개 국가의 수장으로서도 군림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왕이 국가 수장으로 임하는 국가는 엔티가 바부다, 바하마, 벨리즈, 그레나다, 파푸아뉴기니,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솔로몬 제도, 투발루와 같은 군소국가 외에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국제사회에서 중견국 이상, 혹은 그에 준하는 지위를 지니는 국가를 포함합니다. 이들 국가의 통화에 영국 국왕의 초상화가 그려져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2세가 그려진 호주 화폐>

이들 국가가 영국 왕을 형식상의 군주로 추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국왕을 모시는 것이 자국의 민심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며, 자신의 뿌리 그리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지니는 지위와 위상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이들에게 영국 국왕은 자국의 역사를 한때의 대제국과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이며, 이를 통해 해당 국가의 국민들은 뿌리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영국 국왕과 관련한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국가들은 실질적인 외교적 효과도 누릴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 외교적 사안을 조율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큰 효과를 가집니다. 국왕이라는 '큰 어른'을 핑계로 영국을 방문하는 각국 지도자들은 이를 좋은 외교적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외교는 대단히 은밀한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호주/영국 사이에서 이루어진 AUKUS 협정도 발표 전까지 비밀리에 추진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안들을 추진하기 위하여 지도자들은 여러가지 구실을 만들어 외교 방문을 추진하게 됩니다. 영국 국왕의 존재는 지도자들에게 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번에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와 새로이 즉위한 찰스 3세의 미래를 두고 국제사회에는 동요하는 여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근 호주에서 제3당의 지위를 가진 녹색당이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제기한 것이 예시입니다. (관련 기사: http://www.aubreaknews.com/sub_read.html?uid=4889&section=sc7&section2=)

 

[호주브레이크뉴스] 호주 정치 내홍! 뜨거운 ‘공화국’ 논쟁... 외신, 군주제와 작별하려는 움직

박철성대기자<리서치센터국장ㆍ칼럼니스트> 8일(현지시간)영국런던의피커딜리서커스대형스크린에엘리자베스2세여왕의사진이투영되고있다.엘리

www.aubreaknews.com

 

1999년 호주는 이미 군주제 폐지를 위한 국민투표를 한 적이 있고, 당시 과반에 가까운 45%가 공화제에 찬성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호주가 군주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호주 내 호의적인 여론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한편으로 미국과 영국이라는 전통적 동맹과의 관계를 끈끈하게 유지하고 싶었던 호주의 속내가 작용한 현실을 들었습니다.

 

현재로 돌아와, 2022년 찰스 3세가 즉위한 현 상황은 대중의 인기를 받았던 엘리자베스 2세 시기와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동안 찰스 3세가 리더십을 보여줄 만한 적절한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와서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기에 그는 너무 나이가 많습니다. 이것은 군주가 직접적으로 통치할 수 없는 입헌 군주제 하에서 그가 가지는 상징적인 권위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민심을 통합하는 국왕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전임자인 어머니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주제 폐지 여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비단 호주 뿐만이 아닙니다.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안티가 바부다, 자메이카, 벨리즈 등 최소 6개국이 군주제 폐지 의중을 보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관련기사: https://www.npr.org/2022/09/11/1122270133/antigua-and-barbuda-may-try-to-remove-king-charles-iii-as-its-head-of-state)

 

우리가 사는 시대, 상당수 국가는 세습권력이 아닌 국민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립니다. 실질적으로는 세습이더라도 표면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가도 많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국왕이라는 존재는 통치자가 아닌, '통합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정립한 채 몇몇 국가에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국민들이 기대하는 군주의 자격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이들에게 강력한 카리스마, 인자함, 또는 위기 국면에서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것입니다. 70년이라는 긴 재임기간이 준 축복 속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대중에게 군주로서 자신이 지닌 자격을 어필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그녀의 그림자에 갇혀 영국 역사상 가장 긴 기간동안 후계자로 재임했던 국왕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찰스 3세가 처한 현실은 우리에게 21세기를 살아가는 군주의 자격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새롭게 즉위한 그가 스스로 찾아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가 군주이니까요.

 

읽어드리는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9nE9A6am7H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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