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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gold)의 정치경제: 우리는 왜 황금에 열광하는가? 본문

국제시사

금(gold)의 정치경제: 우리는 왜 황금에 열광하는가?

서희국제문제연구소 2022. 9. 2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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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가 올때 마다 금(gold)은 위기를 헷징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호됩니다. 1970년, 금본위제가 막을 내린 이후에도 금은 여전히 가치 보존의 궁극적인 수단으로서 여전히 우리 경제에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금은 쉽게 변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으며, 가공이 쉬워 과거부터 장신구의 재료나 화폐로써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하여 금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가치가 있는 광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이란 것은 사실 그 용도가 대단히 제한적인 광물입니다. 물론 금은 전자기기나 치과 치료 등에 활용되고 있지만, 이외에 금을 사용할 만한 곳은 별로 없습니다. 무기의 재료로 쓰기에 금은 너무 무르며,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이 닥쳐 식량 공급이 위태로울때 금시계는 불과 한 자루의 쌀과 교환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때 금의 실용적인 가치는 그리 높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에 대한 우리의 선호는 오랜 시간 동안의 관습이 축적되어져 만들어져 온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래전 모두가 근근히 하루의 식사를 위해 살아가던 시기, 먹을 것, 입을 것의 궁핍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식량이나 생필품 따위를 생산하는 직무가 아닌, 특수한 직군에 종사했습니다. 군사/경제/정치 등의 직무에 종사하는 소수의 이들, 현대 용어로 우리는 이들을 엘리트(elite)라 불렀고 이들은 사회 내에서 지배 계급으로 군림했습니다.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에 비해 여러 가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금으로 만들어진 장신구는 그 중 하나입니다. 금은 가공이 쉬워 철과 같은 경성 광물 이전에 이미 인간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은 너무 물러서 실용적인 용도 보다는 그것이 가진 반짝거리고 아름다운 성질로 인해 주로 무언가를 장식하는데 쓰였습니다. 금이 가진 장식물로서의 가치는 식량이나 생필품의 생산에 그닥 쓸모가 없었고, 주로 어떻게 하면 피지배 계급보다 자신들을 좀더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지배 계급에게 어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금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광물로서 대중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즉, 금은 지배 계급의 사치재(luxury)였으며, 우리가 명품 옷이나 시계를 그 실용적 가치의 효용을 떠나 선호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던 금이 경제의 주요한 재화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금화가 도입되면서 금은 본격적으로 거래를 매개하는 수단으로 부상하였습니다. 금이 가진 희소성과 불변성은 다른 대체물, 이를테면 조개 껍데기나 화살촉과 같은 것에 비해 화폐로서 우월한 지위를 갖게 하였습니다. 금에 내재된 사치재로서의 성격이 그 불변성을 뒷받침했습니다. 그 결과 금은 금화의 형태로 고대 사회에서 지속 거래되었고, 이것이 금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

 

근현대로 넘어와서 금에 대한 신뢰는 경제적으로 보다 실질적인 기능을 하였습니다. 금본위제(gold standard) 하에서 금은 국가가 발행한 화폐, 즉 명목화폐(fiat money)의 가치를 보전하는 수단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지금 부터는 국제정치학계의 권위적 학술지 중 하나인 인터내셔널 오거니제이션(international organization)에 게재된 아래 논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보겠습니다. 비록 이 논문은 현대의 사례를 이야기하지만, 앞에서 이야기 나눈 과거의 상황 또한 이 논문을 통해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논문보기: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international-organization/article/long-twilight-of-gold-how-a-pivotal-practice-persisted-in-the-assemblage-of-money/4D6FD92E9BAB8192D207E2A5CBFD87E6 )

 

The Long Twilight of Gold: How a Pivotal Practice Persisted in the Assemblage of Money | International Organization | Cambridge

The Long Twilight of Gold: How a Pivotal Practice Persisted in the Assemblage of Money - Volume 76 Issue 3

www.cambridge.org

이 논문에서 저자는 금이 국제금융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게된 경위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1970년대 미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기 전까지 금은 "달러 = 금"이라는 논리하에서 달러의 가치를 보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달러는 금에 비해 가볍고, 또 국제 거래가 용이했기 때문에 화폐로서 높은 효용을 가졌지만 한편으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기에 그 가치에 대하여 의문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달러를 금과 등가교환해 주는 제도인 금본위제를 도입하자 달러는 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일종의 '금 상품권'처럼 인식되었고, 이는 달러의 순환에 바탕한 국제 경제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과 불황으로 인하여 미국이 달러를 끝없이 발행하자, '과연 미국이 발행하는 저 많은 달러가 모두 금으로 바뀔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는 "금 = 달러" 라는 기존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 아시다시피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이 대량의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는 사태로 이어졌고,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결국 금본위제를 폐지하는 수순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자인 Jabko와 Schmidt는 금본위제가 폐지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금을 비축하는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금은 더 이상 달러와 동일시 되지 않는데, 국가들은 왜 금을 사모으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사람들은 금이 불변의 가치를 지니는 광물이라 믿기에 금을 사서 비축한다.'

'그리고 금이 지닌 불변의 가치가 흔들리는 달러화의 가치를 여전히 방어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금과 달러 사이의 관계는 지난 수십년간 이어져 온 두 매개 사이의 끊임없는 교환과 금의 불변 가치(intrinsic value)에 대한 금융 엘리트들의 지속적인 담론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이러한 관계는 금본위제가 끝난 이후에도 관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 가치를 방어하기 위하여, 금을 사모은다'

 

금과 달러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금본위제 폐지 이후에도 계속되는 금에 대한 신뢰와 선호가 인간에 의해 존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금과 달러는 매우 비슷합니다. 둘다 인간이 만들어낸 믿음의 일종이며, 하나의 제도(institution)이기 때문입니다. 금속 덩어리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둘이,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며 즐길 것들과 교환되고 있기때문입니다. 저자는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 '금-달러-상품'으로 이어지는 경제와 금융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주체가, 그러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바로 우리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 경제활동을 통해 우리는 금과 달러가 지니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만들고 유지합니다. 

 

돈은 흔히 '물질적인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에서 볼 수 있듯, 돈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 만사가 우리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을 이 논문을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하며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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